- 경소설회랑에서 칼럼 연재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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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망할 놈의 위장병때문에 입원하고 검진받고 뭐하고 해서 칼럼도 기획도 가다서다를 반복인데, 곧 괜찮아진답니다. -_-;
그냥 시간이 남는 김에 잠깐 써본다. 시간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으니 대충 쓰고 넘어가는 스케치로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길 바람. 사실 담긴 내용들이 허벌나게 어려운 내용도 있기 때문에 그냥 관심있는 사람은 한귀로 듣고 흘리면 그만임.
그냥 완죤 내 맘대로 쓰는것이기 때문에 언제 글을 내릴지는 며느리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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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이랑 문단문학이랑 뭐 어떻게 구분하는거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장르문학 vs 문단문학은 엄밀하게 말하여 소설을 정치/사회적으로 구분하는 도식이 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순수문학의 반대는 참여문학이다. 대중문학이 결코 아니다. 순수참여논쟁이 일어난 시기에 역사적 정황을 본다면 이건 거의 명백하다. 그래서 요새는 ‘문단문학’과 ‘장르문학’ 혹은 대중문학으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럼 SF문학과 문단문학(혹은 순수문학)이 구분될까? 어림없는 소리다. 필립 K 딕의 작품들은 이걸 일거에 바보놀음으로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영문학 비평가들이 이 작품땜에 골머리를 앓다가 이탈리아사람인 에코가 ‘하이퍼리얼리티’라는 단어로 한방에 정리한 것은 유명한 일화)
판타지? 장르판타지라고 말하는 일군의 소설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장르판타지과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아타트롤>은 또 어떻게 할건가? 프리드리히 푸케의 <물의 요정 운디네>는? 장르판타지를 순수문학이나 정통문학쪽에서 따로 분리해버리면 중세 서사시와 유럽 문예사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낭만주의 소설은 죄다 빠져버리게 된다. 호러? E.T.A 호프만과 테오필 고티에는 호구인가?
쉽게 말해서 소설이 ‘소설문학’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준근거중 하나는 루카치가 잘 닦아놓은 ‘내적형식’을 탐구해보는 것이다. 소설(특히 연재형식의 장편소설)의 기원을 ‘총체성 상실로 인해 잉태된 문제적 자아의 모험’으로 간주하는 이것을 우리는 ‘근대소설’이라는 멋들어진 용어로 정리하고 있다. 근대소설의 내적형식은 우리가 아는 문학의, 특히 소설의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리얼리티’, ‘플롯’, ‘캐릭터’, ‘성찰과 반영’(이건 물론 엥겔스의 주장이긴 하지만) 등등등....
그리고 문단문학이라고 불리는 종의 것들은 여전히 이 ‘근대소설’의 이디엄을 쫓는다. 물론 근대소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당대의 하나의 흐름이었으며, 훌륭한 예술의 감동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고 드립을 치면서 찬사한 작가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다. 벌써 130년 작가다. 130년동안 그럼 소설은 여전히 근대소설에 안주하고 있었을까? 절대 아니올시다이다. 근대소설을 개박살 내면서 유럽 소설을 바보로 만든 흐름이 바로 저 유명한 중남미 마술적 사실주의인데, 마술적 사실주의의 내적형식을 이야기하려면 지면이 끝도없이 늘어날테니, 일단 그런 게 있다는 선에서 마무리 짓도록 한다.
요는 문단문학에서 쫓는 내적형식이 분명하게 ‘근대소설의 그것’을 쫓아간다는 것이다. 소설의 ‘플롯’과 ‘구조적 치밀함’, 그리고 ‘수사학’, ‘성찰과 반영’의 밀도를 보는 이러한 문학상 및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것들은 모두 문단문학이 근대문학을 쫓아간다는 것이다. 뭐, 요새야 외국의 내로라하는 현대소설들이 속속 번역되다보니 아직까지 리얼리즘을 부여잡고 있는 문단문학이 드디어 GG를 치고, 최근의 탈리얼리즘적 행보에 발을 맞춰 작가들을 선별하는 것을 보면 이제 좀 뭔가 바뀌고 있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따지면, 드디어 장르문학의 반대가 윤곽이 드러난다. 장르문학, 혹은 장르소설의 여집합은 바로 ‘문단문학’이 아니라 ‘근대소설’이다. 참고로 루카치가 말한 근대소설은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 거고, 그러므로 당연히 19세기까지의 낭만주의 소설은 빠진다. 그래서 낭만주의 소설은 ‘노벨레’라고 부르고, 리얼리즘소설부터는 ‘로만’이라고 나누어 부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생긴다. 문단문학에서 주로 다루는 근대소설의 내적형식이 루카치와 그 이후 네오막시즘 계열의 이론가들에 의해 어느정도 정립이 됐다고 가정한다면, 장르소설의 내적형식은 과연 존재하는가?
나의 대답은 ‘물론 존재한다’다. 우선 판타지소설로 보자면, 우리의 히어로 존 로날드 류얼 톨킨의 <On Fairy Stories>(내가 칼럼쓸때 줄기차게 인용하던 바로 그것. 판타스틱에서 Tree&Leaf를 번역해주면서 이 글을 빼먹었다는 데서 판타스틱이 얼마나 장르에 대해 무지몽매한 집단이었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에는 톨킨이 추구하는 장르판타지의 내적 형식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이타카 홈피에 가면, 내가 이 부분에 대해 대충 적어놓은 칼럼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라고. (또 쓰긴 심히 귀찮음.) 요는 판타지소설의 내적 형식은 ‘내재적 리얼리티’라고 하여 사물에 끼인 리얼리즘의 진부한 시야를 벗어던지게 하는 마력이다. (그래서 On Fairy Stories에서 톨킨은 ‘판타지를 읽는 건 마법에 걸리는 것Enchanted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건 매우 주목할만한 일인데, 이 ’마법에 걸리는 것‘이라는 의미는 노발리스가 말한 ’마성적 관념론‘과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이로써 우리는 장르판타지의 기원이 동화와 겹치면서 동시에 낭만주의 미학에 그 원류가 있다고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SF는 말할 필요가 없다. SF는 근대소설이 ‘플롯’을 쓰듯이 ‘외삽’이라는 아주 훌륭한 에피스테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과학의 인식을 근간으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상상하는 자아의 모험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SF책들에서 밥먹듯이 나오지만, 이것이 ‘구조적 특징’일 뿐만이 아니라 ‘내적형식’에 포함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를 이야기하려면 SF소설의 기원과 탄생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데, 15세기에 독일 마이스터들에 의해 창작된 ‘파우스트 노벨레’를 SF로 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긴 한데,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니깐 여기선 생략.
호러? 호러의 아버지를 E.A 포우로 보지만, 호러라는 것이 가지는 hidden horror라는 관념은 이미 신화시대의 누멘Numen(관심있는 분은 엘리아데의 <성과속>을 읽으시길)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이 공포는 후기낭만주의로 가면서 ‘자아의 망각’과 연관되면서 발전된다. 토도로프가 호러소설을 구조주의의 구문론적 분법으로 분석한것도 흥미롭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호러의 내적형식도 낭만주의, 그것도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집중조명한 후기낭만주의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역사적 궤에 맞물려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단문학’에 밀려있다고 말하는 장르소설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근대소설과 다른 내적구조, 다른 역사적 발전단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번역서도 없을뿐더러, 연구하는 분들도 극히 드문데다가 각 학과마다 퍼져있기 때문에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문학전공자들이라면 알아야한다. 근대소설도 하나의 ‘내적 형식’에 불과하다. 근대소설만이 소설인가? 그것만이 서사문학의 진수인가? 그러면 중세서사시는 어쩔건데? 아도르노가 말한것처럼 고등학교때까지 지겹도록 배운다는, ‘전체주의를 개인속으로 수혈하려한’ 아이헨도르프 소설은?
물론 나는 라노베의 내적형식도 어느정도 연구가 끝난 상태이지만, 굳이 그걸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지 싶다. 그건 나같은 쪼렙 학부졸업생이 할 일이 아니라, 진짜 대학원에서 머리 부여잡고 씨름하는 전공자들이 해야할 몫이니깐. 난 이제 졸업한 전공자이지, 학자는 아니다.
암튼 기나긴 잡담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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